8월 14일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추모식 개최
묘역에서 장군의 유해를 수습 후 시내를 도보로 경유
15일 크즐오르다 상공을 선회 후 광복절 저녁, 최고의 예우로 국내 귀환
16일~17일 국민 추모 기간을 갖고, 18일 대전현충원 안장 예정
대한민국의 위대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서거 78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다.
전설의 독립군 대장, 78년 만의 귀환
홍범도 장군은 1868년 평양 출생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활약하며, 유명한 봉오동 전투를 이끈 민족의 대표적인 항일투쟁 독립운동가이다. 일제에 맞서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하였으나, 국제정세에 휘말려 독립군의 해산이 결정되었고, 연해주에서 살다가 스탈린 시절 한인강제이주정책으로 인해 카자흐스탄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고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1943년 머나먼 이국땅에서 사망하셨다.
유해 봉환을 위한 정부의 노력
국가보훈처장을 단장, 영화배우 조진웅(사진 좌측 두번째)이 국민대표로 선발된 대한민국 특사단이 14일 카자흐스탄에 파견되어 홍 장군의 유해를 수습하여 귀국길에 올랐다.
특사단은 홍 장군의 묘역에서 대한민국, 카자흐스탄 정부 관계자, 고려인 후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열었다.
추모식 후 묘역 주변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홍 장군의 흉상 아래의 석재를 해체하고 유해를 수습했다.
국방부 유해발굴단과 장례지도사가 엄숙히 진행하고, 수숩 후 고려인협회 주관으로 제례의식을 진행했다.
이번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은 2년전 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에 국빈 방문하며 정상회담 당시 홍범도 장군의 유해봉환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고, 합의했던 사항을 8월 15일 광복절과 8월 16~17일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이행하게 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돌아온 민족의 영웅
이번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은 여러차례 우여곡절을 거듭한 끝에 어렵게 성사되었다.
유해를 처음으로 귀환시키려고 했던 것은 우리가 아닌 북한이었다.
1993년 북한 정부는 홍장군의 유해 봉환을 카자흐스탄 정부에 정식 요청하였으나 당시 고려인 사회의 반발로 성사되지 못했고, 소식을 접한 대한민국 정부는 현지에 조사단을 급파하였다.
정부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홍 장군의 유해를 모셔오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북한의 반발로 우리의 시도 또한 실현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20년의 시간이 흘렀고 정부는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와 다시 논의를 시작했고 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시 봉오동 전투 100주년이 되는 2020년까지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오기 위한 의지를 다시 한번 명확히 전달하였다.
외교부, 국방부까지 힘을 보탰고 민족의 영웅은 이국땅에 뭍힌지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봉오동전투
1920년 6월 만주 봉오동에서 홍범도, 최진동 등이 이끄는 연합독립군단이 일본군을 대파한 전투. 전체적으로 일본군을 유인하여 격파한다는 작전 아래 행해진 것이었다. 홍범도의 지휘 아래 독립군 이화일은 일본군을 유인하고, 독립군은 여섯 개의 부대로 나뉘어 각각 봉오골의 서북단, 동쪽 산, 북쪽 산, 서쪽 산 남단에 매복, 나머지 두 부대는 홍범도와 함께 서북 북단에 매복했다. 마침내 봉오동 골짜기로 진입한 일본군은 사방에서 공격당했으며 400명 이상이 죽거나 다쳤다. 반면 독립군은 6명의 피해자만이 발생하여 큰 승리를 거둔 전투로 기록되었다.
봉오동전투의 승리로 독립군의 사기는 크게 진작되었으며, 독립전쟁의 지속적인 수행을 위해서 병력보강과 군비 확충에 더욱 힘을 쏟게 되었다.(출처 : 다음 백과)
2019년 유해진, 류준열 주연의 동명의 제목으로 영화가 개봏되었으며 478만 명의 관객이 관람하며 2021년 8월 현재, 역대 흥행 순위 119위를 기록하고 있다.
영화에서 홍범도 장군역을 맡은 배우는 최민식이었으며, 특별출연으로 영화에 잠깐 등장하지만 단단 연기로 영화의 무게감과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 |
![]() |
유해봉환에 대한 생각
성격은 다르지만 국방부에서 진행하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은 정말 중요한 사업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끝까지 찾아내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정부의 의지와 책임감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군대에 복무하면서 국가를 지키고 있는 국군장병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우이기 때문이다.
유해가 발굴되어 DNA 검사로 신원이 확인된 후 70년 세월을 지나 가족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국을 떠나 연해주에서 생활하던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많은 동포들은 스탈린의 한인강제이주정책으로 또 한 번 삶의 터전을 잃고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이주되었다.
장군은 현지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으며 재혼한 아내와 여생을 보내며 농장의 관리인, 극장의 경비원으로 일을 하며 말년을 보내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쓸쓸히라는 표현은 쓰지않도록 하겠다.
장군이 여생을 보냈던 카자흐스탄에는 많은 고려인 후손이 살아왔고 살고 있다.
동포들은 장군의 묘 앞에 동상을 세웠고, 매년 설날과 기일에 묘소를 찾아 참배한다.
홍범도 장군은 그들의 영웅이며,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장군의 유해를 한국으로 모셔온다는것은 고려인 후손들에게 굉장한 사건일 것이며,
정부도 그것을 알기에 고려인연합회와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며 유해 봉환을 준비했을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가던 일제강점기. 고국과 민족을 위해 투쟁하다 머나먼 타국에서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영면하신 민족의 영웅을 고국으로 모셔온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는다.
책과 영화로 접하던 우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은 78년의 세월을 지나 8월 15일 광복절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16일~17일은 대국민 추모기간을 갖고 18일에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다.
추모란 거창한것이 아니다. 홍 장군의 일대기를 읽거나, 영화 봉오동전투를 보는 것도 어떤 의미의 추모가 되는 것이다.
고려인 후손들은 왜 영웅의 유해봉환에 동의했을까?
더 많은 한국 동포들이 장군을 추모하고 묘역을 찾아 참배해주길 바래서이지 않았을까?
2018년 발행된 홍범도 장군 탄생 150주년 기념우표
영화배우 조진웅, 홍범도 장군을 모시고 귀국하다 - 다른 영화배우는?
8월 15일 광복절, 영화배우 조진웅이 국민을 대표하여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모셔온다. 홍범도 장군은 독립군 최초의 승리인 봉오동 전투를 이끈 독립운동의 영웅이다. 조징웅은 영화 '암살' , '
hwangdaeri.tistory.com
포스팅이 도움이 되었다면
↙저기에 보이는 '♡공감' 버튼을 눌러 칭찬해주세요
귀멸의칼날 코스프레 - 2021 일본 시부야 할로윈 근황 (0) | 2021.11.03 |
---|---|
2021 홍대 할로윈데이 축제 근황 (1) | 2021.11.02 |
2021 이태원 할로윈데이 축제에 모인 사람들 대박 (1) | 2021.10.31 |
장제원 아들 노엘 무면허 운전, 경찰 폭행에 힙합계 퇴출 촉구 성명발표 (0) | 2021.09.23 |
영화배우 조진웅, 홍범도 장군을 모시고 귀국하다 - 다른 영화배우는? (12) | 2021.08.15 |